<캐쉬백>이라는 영화가 있다. 2006년 쯤 봤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애인한테 차인 이후로 잠을 잘 수 없는 남자는 슈퍼마켓의 야간 시프트로 일한다. 잠잘 수 없어 남겨진 시간을 슈퍼마켓의 매장에서 돈으로 바꾼다고 해서 캐쉬백이다. 모든 사람이 다 잠든 그 시간, 잠자라고 있는 어둠의 시간 동안 깨어있어야 하는 야간 매장. 그 속에서 남자는 시간을 얼린다. 정지시킨 시간 속에서 여자의 전라를 상상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다. 매혹적인 영화였는데, 허접스런 차림으로 나온 여자 주인공이 처음에는 별볼일 없어보였는데, 남자가 그 여자를 알아가는 과정,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속에서 관객인 나도 여자가 점점 예뻐보이는 경험을 했다. 잠못이르는 시간동안에 쌓아가는 사랑. 얼마나 달콤한가. 그러나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진화가 만들어놓은 질서에 반항하는 일은 언제나 댓가가 필요하다. 남들 잘 때 안잤을 때, 못잤을 때의 댓가는 혼자밖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어서 고독하다.
이 책은 잠못드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병적으로 잠못자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Part1에 그 예가 나와있다. 100쪽에 달하는 잠못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담 내용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잠못드는 사람들이 의사에게 호소하는 내용이 그대로 실렸다. 불면증은 원인도 다양하다. 심지어 불면증이 아닌데도 불면증이라고 우기는 병도 있는데, 그것도 엄연히 수면장애의 일종으로 치료가 필요하단다. 어떤 글은 어이없고, 어떤 글은 넋두리에 가깝다. 잠을 못자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사는 얘기 남편 얘기까지 다 나온다. 젊었을 때 바람피고 돈도 안갖다줘서 힘들게했던 남편이 '어느 때부터 남편이 여자 때문에 더 이상 속 썩이는 일이 없어 한편으론 서글픈 마음도 덜더라'는 얘기 '이 양반도 이제 늙었구나 싶어서' 또, 이런 저런 사는 얘기까지 모조리 실었다.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걱정이 많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을까.
심각한 불면증은 아니지만, 나 역시 쉽게 잠드는 편은 아니라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읽어보니, 모든 증상, 모든 습관 딱딱 들어맞는다. 만일 당신이 점쟁이나 철학관을 운영한다면, 예를 들어, 잠을 못잔다 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면 쪽집개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밥맛이 없죠. 자려고 생각하면 더 잠이 안오죠? 평소 근육이 여기저기 아프죠? 머리가 아프죠? 평소 피로감, 어지럼증이 있죠? 기억력이 떨어지죠? 손발이 차죠? 이게 다 수면 부족이 원인으로 생기거나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는 증상들이다.
섬유근육통증후군은 만성불면증에 동반되는 질환 중 하나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평소에도 몸에 힘이들어가 있다. 어제 밤에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니, 누워서도 발가락에도 어깨에도 허리에도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이 그렇다고 한다. 근육이 수축되어 있으면 피가 통하지 않고 노폐물이 쌓이고 근육에 탈이난다. 두통도 마찬가지인데, 긴장성 두통은 뒷목 위 두피 아래 근육의 긴장으로 생기고 어깨 근육과도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두통과 연결된다. 턱이나 목 주위의 통증도 모두 수축과 관계있다.
잠이 부족하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것이 우울증과도 관계있는 이유는 수면이 부족했을 때 기분좋은 경험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기분 나쁜 경험은 별 차이 없이 기억한다는 연구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꿈꾸는 수면인 렘수면동안 감정을 정화시키는 작업을 하는데, 이런 일을 하지 못해서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한다. 노인들에게는 수면부족이 알츠하이머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불면증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코티졸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뇌세포 중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파괴한다. 특히 알츠하이머는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독성물질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세포가 파괴되어 기능을 잃어가는 병인데, 잠을 충분히 자면 베타-아밀로이드가 제거되는 속도가 더 빠를 뿐만 아니라, 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되는 것 자체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이로 인해 수면 각성을 조절하는 뇌중추의 역할이 떨어지는 물고 무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약물의 사용을 자제하라는 것과 인지행동치료를 통해서 불면증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종류의 약이든, 한약이든 민간요법이든 수면제 효과가 있는 항히스타민제나 감기약이든 수면제 의존은 수면제 중독을 부른다. 수면에는 1단계, 2단계, 3단계 수면이 있는데, 수면제로는 가장 깊고 질이 좋은 3단계 수면을 취하기 어렵고 2단계에 머물기 때문에 그냥 잠처럼 생긴 가짜잠을 자는 것이라고 한다. 수면제는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건강보조식품으로 나와있는 멜라토닌 정제 이야기는 귀가 솔깃했다. 보통 청소년들은 멜라토닌 분비 시간대가 늦어 올빼미같이 못자고 아침에 못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청소년기를 석기시대에 보낸 나도 멜라토닌 분비가 늦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조식품 승인이 안나서, 의사한테 가서 처방전받으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걸 먹으면 수면 시간에 관여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일시적으로 인위적으로 많아져서 잠자는 시간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한다. 수면제는 특히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라고 한다. 수면제 복용시 뇌의 호흡중추도 억제되기 때문에, 호흡하려는 노력을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혈압도 높아지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수면제 대신 불면증의 치료로 가장 효과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지행동치료로, 기본적으로는 내원해서 잠을 자면서 수면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과 의사와 병원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이 책에서도 몇가지 기본적인 사항들이 소개되어 있다. 잠을 자기 위해서는
1. 시계를 멀리한다.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잠을 못자는 사실에 연연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 커피와 같은 카페인의 섭취를 줄인다. 각성물질은 체내에 10~12시간까지 걸리기 때문에, 낮에 마신 커피가 체내에 남아 수면을 방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3. 침실은 어둡고 조용하게 습도는 50%, 온도는 22도 정도로 낮게 유지.
4. 베개의 높이는 6~8m, 똑바로 누워서 수면
5. 침상에서 책을 읽거나 TV같은 걸 보지 말고, 침대는 잠을 자는 곳이라는 인식을 뇌에게 각인시킨다. 15분 이상 잠이 안오면 밖으로 나오고, 딴일을 보다가 잠이오면 들어가서 누워있고, 다시 또 15분 이상 잠이 안오면 다시 밖으로 나오는 방법으로 침상과 생활을 분리한다. 스마트폰도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