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이란 말은 더 이상 전문용어가 아니다. 우리는 쉽게 가상현실이라고 이름붙여진 것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게임의 세계에서, 현실과 게임 속 세상이 구분되지 않을만큼 정교한 시뮬레이션된 대상들을 만나,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필드에서 가상현실의 기술들이 접목되고 응용되고 있으므로 정의 역시 많지만 일반적으로 현실과 유사한 현실을 창조하는 활동이라고 하면 어디에서건 통할 것 같다.
내가 흥미롭게 본 영화 중에서는 매트릭스나, 아바타, 소스코드, 인셉션 같은 것들의 무대가 가상현실을 잘 묘사한 것 같다. 특히 소스코드에서는 신체의 모든 부위가 없이 달랑 뇌 하나만 어떤 용액 속에 담겨진 채로 완벽하게 두뇌로서만 현실을 대한다. 그런데 그가 대하는 자꾸만 똑 같은 일이 반복되는 현실은 사실은 현실이 아니라 그의 뇌와 최신 기술들이 만들어 내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상현실이다. 아바타 역시 기계속에 들어가야만 자신의 아바타가 어떤 가상의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가상인지 실제인지, 혼란스럽기는 매트릭스가 캡인듯.
하지만 이 기술들은 아직은 상상 속의 세계들이다. 가상의 세계가 우리 앞에 여러 종류의 매체를 통해 드넓게 펼쳐져 있지만, 분명 현실과는 구분된다. 3D 영화를 보면서 뭔가가 내 앞으로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일시적으로 가질 수는 있지만 매트릭스나 소스코드처럼 현실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나는 미래의 어떤 날에, 오염된 현실이 시궁창 같지만 모두다 신체는 밀실에 유폐된 채 가상공간 속에서 천국같은(미래의 세계에 천국이란 오늘날처럼 푸른 초목이 노출된 시대를 말하는 걸지도 모르므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에 펼쳐지는 여러가지 공상들을 자주 한다.
서두가 길었는데, 이 제품은 책이라기 보다는 구글 카드보드라는 제품이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컨셉을 말하려다가 길어져 버렸다. 2014년 구글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나누어준 구글의 카드보드는 가상현실 앱을 보여주기 위한 HMD(Head Mounted Display)의 일종인 ‘오큘리스 리프트를 쓰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는’, 3D 안경이다. HMD는 종종 영화에서 보면 가상현실에 들어갈 때 등장인물들이 쓰는 멋지게 생긴 안경인데, 그것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만원짜리 종이 조립품품인 것이다. 구글에서 처음 발표한 것은 카드보드지로 만들어졌지만, 이 제품은 스티로폼 비슷한 폭신폭신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종이보다 내구성도 좋고, 눈에 대기도 편할 듯하다. 그렇다면 이 요상한 물건으로 무엇을 하느냐, 3D VR 앱을 볼 수 있다. 3D VR 앱은 구글 플레이 들어가면 얼마든지 다운받을 수 있고, 이 제품의 매뉴얼에 소개되어 있는 15개의 앱만으로도 안드로이드 VR의 세계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구글은 이 카드보드 도면을 공개하고 누구나 만들어 볼 수 있게 했는데, 사실 어안렌즈 두 개를 이용해 바로 앞의 스마트 폰을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잰 매우 기본적인 장치이다. ‘세상이 바뀔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화면을 따라 보고 싶은 곳을 보기 위해 계속 돌다보면 앉은 자리에서 사방팔방으로 360 도 돌게 되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 멀미가 난다. 먼저 VR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카드보드 공식앱을 설치해보면 구글어스 데모, 윈디 데이, 투어가이드, 유투브와 포노스피어 앱 등을 볼 수 있는데, 데모라서 이 기기(?)를 이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 정도만을 얻을 수 있다.
투어가이드에서 보여주는 베르사이유 궁이 실사라 현실감 넘쳤다. 데모 말고 첫번째로 깔아본 앱은 Roller Coaster VR로 열대 지방을 배경으로 운영되는 롤러코스트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판에 5분 정도 걸리는 것 같은데 끝나고 나면 완전 어지러워 누워있어야 했다, 용량이 매우 커서, 앱을 여러 개 지워야 했고, 받아놓은 팟캐스트도 몽땅 지워야 했지만, 신기한 경험을 했다. DebrisDefrag for Cardboard는 3차원 게임으로, 운석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우주에서 운석을 향해 레이저건을 쏘아 운석을 파괴하는 것인데, 수평방향 뿐만 아니라 모든 방향에서 운석이 날라오므로 한쪽으로 돌다가는 반대쪽에서 날아노는 운석을 피하지 못해 얻어맞으며, 명중할 때의 짜릿한 손맛을 싸운드로 느낄 수 있다.
조립식이어서 일일히 뜯어서 조립했는데, 어렵지는 않지만 성인이 하기에는 좀 귀찮고, 아이들이 있으면 좋아할 것 같다. 한 가지 렌즈 붙이는 방향에 대한 설명이 매뉴얼에 조금 모호하게 되어 있어서, 붙였다 떼었다 하느라 렌즈에 온갖 찐득거리는 접합부가 붙어서 닦아내느라 생고생. 게다가 렌즈 접합 부위의 접합면이딱 들어맞지 않아서 자꾸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이건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마그네틱으로 된 부분은 자기 센서가 있는데도 어떻게 작동되는지 아직도 파악이 안된다.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감. 어른들에게는 조금 어지러운 놀이감. 다른 앱도 하나씩 해봐야겠다. 특히 게임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