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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실용

[X-Knowledge] 마음이 설레는 집 도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가끔은 작은 뜰에서 꽃나무를 가꿀 수 있고, 빗소리를 들을 수 있고, 창을 열면 바로 마당과 이어진 독립된 주거 공간을 갖는 꿈을 꾸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릴 때 대청마루가 있는 오래된 한옥집에서 자라서 빗소리가 들리고 확트인 개방 공간과 실내 공간이 바로 연결되는 주택이 가끔은 그립다. 그렇다고 그런 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타협해서 그런 공간으로 이사가야 할 일이 생길 것 같다.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일에 대비해서 나중 살 공간에 대한 생각을 차곡 차곡 모아놓을 필요가 있을 듯해서 한동안 건축 관련 책들을 몰아서 봤었는데, 오랜만에 매우 현실적인 책을 보았다. 


건축가가 쓴 공간에 관한 에세이류를 읽으면, 직접 디자인한 공간에 대한 배치라던가,  각각의  공간이  어떤 의도로 어떻게 설계되어 있으며, 어떤 공간적 특징을 갖는다는 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아쉬운 점은 마치 책을 읽지 않은 채 감상문만 읽는 것이나, 혹은 그림은 보지 않은 채 그림에 대한 리뷰를 듣는 것, 연주회에 가지 않은 채 음악에 대한 감상문과 리뷰를 읽는 것처럼 답답했다. 물론 대개는 사진들을 싣기는 하지만, 두루 둘러보는 것과 한 방향에서 일부만 찍은 사진과의 차이는 크다. 그럴 때는 (비록 건축 설계도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지만) 설계도면 같은 게 있으면 그 공간의 다양한 각도와 배치에 대해 상상력을 가질 수 있을텐데 없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런 답답함을 해소시켜주는 공간 배치의 실제 모습인 평면도와 평면도 상의 각 공간의 사진을 함께 실어 놓은 제목 그대로 집도감이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잘 이용하는 일본인들 답게 작은 도시의 귀퉁이 땅에 맞게 설계되고 그 작은 땅에 또 작은 뜰이라든가, 주차장이라든가 하는 공간들을 활용하여 잘 꾸며진 집들을 구석구석 사진과 함께 싣고 있다. 따라서 텍스트 보다는 집의 설계도면과 각 공간의 사진, 그리고 부분에 대한 간략한 설명 위주로 되어 있다. 전체 123개의 실제 집에 대한 도감이 들어있는데, 도쿄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좁은 땅 위에 가정집 목적으로 지어진 집들이 용도와 목적 혹은 취향에 맞도록 몇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대지 면적은 20평~30평 규모가 가장 많고 50평만 해도 큰 편에 속한다. 대개 지상 2층이나 3층의 형태로 되어 전체 연면적은 30~40평 내외 규모이고 기본적으로 거실, 욕실, 주방, 안방과 아이들방 혹은 목적에 맞는 방들로 이루어진다. 


이 집들은 11개의 장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조망좋은 방을 갖고 싶은 경우, 실외와 실내를 잇고 싶은 경우, 자연 가까이에 사는 경우, 목재가 어우러진 집,  공간을 넓게 쓰고 싶은 경우, 깔끔하게 수납하고 싶은 경우, 주방 중심의 집,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집, 한 집에 오래 사는 경우의 집, 자연 친화적인 집, 적절한 비용이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집으로 분류되어 있다.  실내에서도 여유로운 풍경을 즐기려면 어떻게 공간 배치를 해야 할까. 창이 있는 곳에 나무를 심거나 숲이 보이는 쪽으로 방을 둘 수 있겠지만 창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서도 풍경이 달리 보이므로 대형 미닫이창을 완전히 열면 반 옥외 공간이 되도록 공간을 배치하는 예를 보여준다. 바다가 보이는 건물 남쪽에는 테라스로 이어지는 개방성 좋은 거실과 식당을 배치하는 식이다. 


케이블 티브이에서도 여러가지 종류의 작고 특이한 집들을 짓고 사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종종하는데, TV나 잡지 같은 곳에서 예쁜 곳만 골라 찍은 작고 에쁜 집들을 이렇게 많이 모아놓으니, 심심할 때마다 들여다보면서 작은 사진에 찍혀 있는 각 공간들을 배치도를 보며 상상으로 연결하고 그 공간을 그려보는 재미도 있다. 나이가 들면 뜰이 달린 집을 갖고 싶어하는 가족이 있는데, 편한 걸 좋아하는 나는 결사 반대지만, 이렇게 작고 아담하고 쾌적한 공간을 가진 소박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집이라면, 생각해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