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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소설

[이광재] 나라없는 나라

나라 없는 나라 - 10점
이광재 지음/다산책방

부끄러운 일이다. 전봉준을 알았으나, 교과서에서 배운 한 줄 그게 전부였다. 때로 역사 소설과 대하 드라마에서도 등장했겠지만 사적 감정들과 액션 활극이 난무하는 드라마의 틈새에서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체게바라가 유행해서,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봤다. 공산주의 혁명의 정신이 낭만이 된 이유는 공산주의가 거의 완전히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전봉준은,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은 여전히 아프다. 100여년간 다른 이름으로 계속되어 왔기 었기 때문이다. 


혼불문학상의 정신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상의 이름을 따왔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한 5년전쯤? 10년전쯤 친구가 혼불을 읽으라고 보내줘서, 읽으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었는데, 실패했다. 읽기에 실패한 건 독자로서 나의 문제였고, 최명희 문학관에 가서 최명희의 삶을 조명해보고, 혼불에 나오는 여러가지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들과 문학관이 있는 위치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혼불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무지했고(지금도 그렇고)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한국말인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해석이 안될만큼 모르는 소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소설은 혼불 못지 않게 어려운 단어가 많다. 이 책이 다산책방의 나나흰 필독서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못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었다. 끝까지 읽지 않고는 리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무슨 책이든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감동은 맨 마지막줄이 끝나야 가시화된다. 


이순신공을 엄청나게 존경하지만, 이름없는 민초들 없는 승리를 상상할 수 없듯, 동학농민혁명의 전과정이 전봉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올해 혼불 문학상의 대상 이광재 작가는 평생 많은 시간을 들여 전봉준을 연구한 것으로 보이는 데, 얼마전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2012)를 펴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들었을 때 전봉준의 활약에 서사가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전봉준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원톱주인공도 아니고, 조금 비중있게 다루어졌을 뿐, 소설은 풍전등화와 같이 스러져가는 조선 말기 정치적 상황과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후에 명명한 사건의 거대한 흐름을 재현한 서사를 축으로 엄청나게 많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시각을 조명하며 채워간다. 


물론 교과서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실패했고, 전봉준은 잡혀가서 사형당해 죽었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전봉준을 따르던 자들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 어디까지 일이 진전되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전혀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전봉준을 후원하던 이들, 그 많은 군사들과 무기를 어우를 수 있는 조직력과 리더쉽의 정체가 무엇이었으며, 혁명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레미제라블을 통해 파리의 시민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바리케이트를 치고 총칼에 맞아 죽어가던 숭고한 자유라는 그 사상적 기반을 흠모하는 동안, 우리는 글자조차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농민들이 어떻게 신분철폐와 집강소 설치와 같은 혁명적 성과를 이룬 것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집강소 들어가서 잡세는 어떻게 허며 결세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도 하고 큰소리도 내고 그러는디 아 그 것이 시상 없이 재밌는 일들이란 말이여. 우리 일을 우리가 결정하고 득되는 일을 하는데 힘이 안나 그런게 이 놈들이 지금까지 지들만 해 먹었등개벼284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집강소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소식을 접한 순변사 김학진은 민족적 위기를 명분으로 삼아 농민군 지도부에 회담을 제의하였고, 김학진과 전봉준은 7월 6일 전주에서 회담을 가졌다. 전주회담에서 전봉준과 김학진은 정부와 농민군이 협력하여 전라도내의 안정과 치안질서를 바로잡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방법으로서 각 군현에 집강소(執綱所)를 전면적으로 설치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회담을 마친 전봉준은 김학진과의 합의에 따라 전주성안에 전라좌우도 대도소를 설치하고, 각 군현 단위로 집강을 두도록 하였다.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가 전면적으로 설치 운영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로써 농민군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은 기존질서와의 타협을 실행에 옮긴 것인데, 이것은 관과의 타협으로 농민군의 세력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군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데 뜻을 둔 것이었다."(인터넷 백과사전) 로 나온다. 비록 일본의 개입으로 세를 확장하지 못하고 도중하차하고 말았으나, 전라도 일대에 전면적으로 집강소가 설치되어 민주적인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면, 그 기간만큼은 혁명은 성공했던 것이 아닌가. 전봉준은 그 혁명의 가장 꼭대기의 대장이었으며, 많은 동학군의 수장들이 전투를 이끌어 승리를 하고, 정책을 함께 결정하였고, 그것은 하루 이틀에 걸쳐 있었던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국은 이가 빠져 조선을 가지고 놀더라도 뜯어 먹지 못하니 남 또한 먹지 못하게 으르렁대고 있지요. 그에 비해 일본은 발톱이 강성해진 호랑이입니다. 늙은 호랑이를 쫓으려고 젊은 호랑이를 들이는 건 하책이라 생각됩니다 99


우리는 이나라의 꼭대기에 있는 자들 그들이 만든 제도며 심법과 싸우는 것이요. 그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적암리 연구결과 경구님 여초 토사와 방백 수령입니다154


네 세상이 버거운 게로구나...그 말에 눈시울이 후끈해졌다... 위로니 아량이니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크기가 아니라 관점을 공유하는 데서 나오는 듯하였다. 241


돌아가라. 방법을 찾지 못하거든 국적이 되지 않을 길을 구하라. 어차피 나라가 없어지면 다같이 죽을 목숨이다 .241


도대체 어떤 절박함이 자들을 부추겼던 말인가 비록 적도를 설탕 하더라도 예전 회사 그러는 돌아가지 못하리란 예감이 예감에 백날 구하는 전율 했다 관성의 따라 신선놀음 아들 그날이 그날이 냥 느릿하게 살아가는 동안 세상은 훈련장 점에 이르러 있었다 294

받아 먹지 못하는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냐? 양반의 족보를 만드는데 베를 바치고 수령들 처첩까지 수발을 들면서 철마다 끌려가 곤장을 맞을 테냐 ? 
이제는 그렇게 못 살지요.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 간단 말이냐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번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 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