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자밖 여운/교양

[샤론 모알렘]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 10점
샤론 모알렘 지음, 정경 옮김/김영사

제목을 보고 알쏭달쏭한 표정이 만들어지는 책들은 원제를 보면 이해가 쉬운데,  이 책의 원제는 Inheritance로 한 마디로 유전적 질병에 대한 현대 의학적 지식이 망라된 책으로 유전적 질병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사실 유전적 질병이라고 하면, 다운증후군이라던가 하는 선천성 질환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고혈압이니 심장병이니 하는 만성적으로 퍼져 있는 수많은 질병들에서 희귀질병까지 유전적 이유와 환경적 인자의 고유 결합이 만들어낸 산물임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게놈 프로젝트가 인간의 유전자의 모든 염기 서열을 분석해 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다 밝혀낸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마치 아무도 모르는 외계어로 된 방대한 책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일 것 같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동안 유전학은 비약적인 속도로 발전을 했던 모양인지, 이 책에서는 최근에 발견된 것을 포함한 각종 유전적 질환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들이 많이 실려있다. 


저자 샤론 모알렘은 희귀 유전병에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진화의학 박사로 많은 저서를 출판했고, 국내에서는 <아파야 산다, survival of the sickest>, <진화의 선물, 사랑의 작동원리 How sex works>가 있다고 하는데, 내게는 처음으로 접하는 저자이다. 얼마전 올리버 색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대를 이을 대중적인 의학전문작가들이 많이 거론되고 마케팅시에도 함께 비교하곤 하는데, 유전질병 연구에 있어 한사람 한사람의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성과를 거두는 타입이라는 알 수 있었다. 


우선 1장을 펼치면 신기하게도 책이 술술 잘 넘어가는데, 그것은 저자가 마치 점쟁이가 관상을 보듯, 사람의 생김새로부터 질병을 파악하는 능력에 대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염기 서열은 엄청나게 방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무턱대고 모든 유전자 염기 서열을 검사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의 신체적 특징으로부터 가능한 유전적 질병을 필터링해서 조사하는 것이다. 얼굴이 대칭적인가, 입술이 얇은가 두꺼운가, 이마는 넓은가, 관지놀이가 좁은가, 이런 신체적 해부학적 특징이 특정 유전적 질환을 나타내는 표식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저자는 유전병을 진단하기 위해 온갖 장비들과 침습적 방법으로 환자를 위협하기 전에 '가장 비침습적이면서도 기술적으로 가장 정교한 접근'을 선호한다. 


사실 단 하나의 글자 하나, 수억개의 염기 쌍 중, 그 한 글자의 잘못된 조합이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유전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이 넓은 우주에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책에서는 저자가 직접 다루었거나 알고 있는 여러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실제로 유전병의 유전학적 구조와, 발생경위 등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남의 질병을 가지고 흥미롭다는 표현을 쓰는 일이 조금 불편하겠지만 세상에는 희귀한 질병들이 많고, 그런 얼토당토 않은 것처럼 보이는 희귀한 질병의 사례를 만났을 때는, 인간으로서 왜 그렇게 다른 개체들이 출연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알고 흥미를 갖게 된다. 


저자가 직접 만난 선청성 고관절이형성이라는 질병이 그 중 하나인데, 고관절이 자꾸 탈골이 되는 흔한 장애이지만, 저자가 만난 그레이스는 살짝만 움직여도 몸에서 총소리 같은 엄청난 소리가 나면서 다리가 부러진다. 이 중국에서 입양된 아기의 스토리는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과 환경적 변화로 질병을 극복해나갔다는 흔흔한 스토리로 이어지지만 이 병과 정 반대로 내피세포가 조골세포로 바뀌는 골화성 이형성증은 더욱 미스터리하다. 뼈가 굳어지기 시작해서 사망할 때까지 입술 이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는 끔찍한 유전적 질병이다. 이러한 어마무시한 유전적 질병들은 단 하나의 글자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몸에서 콜라겐을 만드는 COL1A1 유전자 코드는 수십억개의 뉴클리오티드 순서중 GAATCC-CCT-GGT 부분인데, 이것 대신 GAATCC-CCT-TGT로 바뀌면 골격이 대리석처럼 뻣뻣해지거나 부서지는 뼈를 갖게 된다.


이런 식으로 많은 유전적 질병이 설명되고, 그러한 유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이상없이 일생을 건강하게 지내는 사람과 매우 심각한 질병을 안고 사는 경우가 생기는 환경적 후생유전학적 측면에서의 연구 결과들을 다량 소개하는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남자와 여자를 결정하는 유전자에 관련된 이탄의 이야기였다. 이미 전통적으로 태국과 네팔, 인도와 파키스탄 등지의 동남아에서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제3의 성을 법적으로 하나의 정상적인 성으로 인정해 여권에 기입하는 사례가 등장했는데, 이것은 자유분방한 서방 사회로부터 얻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4천년 넘은 역사적 산물로 남자도 여자도 아닌 다양성이 이들 지역의 유전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성이란 것은 무엇일까. 


이탄의 경우 남성적 특성을 지닌 아들로 태어났지만 분명 XX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그런 경우 대개는 CYP21A라는 유전자의 한 버전인 선천성 부신과형증에 의해 남성 호르몬이 많아지는 질병일 가능성이 많았지만, 이탄의 경우에는 달랐다. 이야기는 이렇다. 원래 여자로 발달하는 아이들은 두 개의 X 염색체에 두 개의 SOX3 복사본을 가지지만 하나의 X 염색체는 꺼지거나 침묵하는데 이탄의 X 염색체에는 SOX3 유전자에 반복이 있었고, 이 반복이 유전자가 더 발현될 기회를 주게 된 것이다. 이 유전자는 남자로 발달하는 데 중요한 유전자인 SRY 영역과 90퍼센트 이상의 염기서열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SRY는 Y 염색체에만 있는 것이고 SOX3은 X 염색체에존재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들은 SOX3 유전자의 중복과 여성 XX 상보 염색체를 가졌음에도 정상적으로 여자가 되는데 이탄만 남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한 순간의 환경적 영향이나 다른 이유로 인한 유전적 발현이나 억제가 삶의 경로를 영원히 바꾼다는 사실로 설명하고 있는데, 결국 아직 성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유전적 유산은 경험을 바꾸고 유전적 유연성은 삶을 결정한다. 태내에서 발달하는 동안 유전체의 발현에 아주 작은 변화라도 있으면 심지어 그 사람의 성별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수십억개의 염기쌍이 똑같이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라 하더라도,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느냐에 따라 개인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유전자가 삶을 결정하지만 그 유전자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이고 환경이라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