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에 태어나 의사의 길을 걷다가 1919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 불가꼬프는 후에 의사의 길을 완전히 접고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만, 1929년 이래 반소비에트적이라는 이유로 강요된 침묵 속에서 모든 작품의 출판과 공연이 금지된 채로 고통을 겪다가 죽었다. 이 작품은 1928년 집필을 시작해 1940년 사망 직전까지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던 작품으로, 작가의 최고작이면서 20세기 최고의 러시아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책의 서두에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도 검열은 끝나지 않았고, 사후 26년만인 1966년에야 빛을 보게 되었다.
현실과 비현실이 이루는 모호한 경계, 소설 속의 소설가와 그 소설가가 쓴 소설의 인물들,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 사이의 꼬여있는 관계 등 여러가지 서사와 인물과 장치들이 환상과 현실의 중간쯤에서 복잡하게 얽혀있어 조금만 방심하면 자주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실제로 소설이 발표된 것은 1966년이라고 하지만, 192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작가의 새로운 형식의 시도가 돋보이는 파격적인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전체적으로 볼 때 크게 세 가지 갈래의 이야기들이 별개의 이야기처럼 흩어진채로 시작하다가 후에 차차 거대한 한 덩어리로 통일을 이루는 것을 경험하는데, 흩어진 이야기들 중 하나는 거장으로 불리는 소설가와 마르가리따라는 유부녀 사이에서 거장이 쓴 소설 빌라도와 예수아 가노쯔리에 대한 소설을 둘러싼 사랑과 욕망과 미스터리로 이루어진 한 덩어리의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동료 시인 의문의 죽음을 목격한 후 악한 영의 존재를 설명하려다가 정신병원에 갇힌 이반 니꼴라예비치 베즈돔니와 그를 곤경에 빠뜨린 사탄의 무리들인 볼랜드와 고양이를 포함한 그 수행원들이 모스코바에서 마법쇼를 빙자한 온갖 살인과 사기와 마법을 저지르고 다니면서 관료들과 시민들을 향한 거대한 풍자극이다. 나머지 하나는 거장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예수 시대의 실존인물 본디오 빌라도와 그리스도에 대한 거장의 해석판 예수인 예수아 가 노리쯔가 2천년전의 시간 배경으로 이루는 흥미진진한 신화적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세 개의 이야기는 별개로 뜯어내더라도 훌륭하고 완결된 하나의 서사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이 점점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야기의 판은 거대해지며, 그로테스크한 장르 문학의 요소 요소들을 환상적으로 엮는 동시에 공산적 관료제의 절정에 있는 소련 사회와 실재했던 많은 실존 인물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재현한다. 두통에 시달리는 빌라도의 고뇌와 예수에게서 기대하는 처방, 그리고 의도적으로 무죄방면시키기 위한 그의 헛된 노력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다급한 상황들을 그린 거장의 소설의 내용은 독자 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내연녀 마르가리따의 혼을 빼놓는다. 하지만 거장의 소설은 비평가들과 문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거장은 절망감에 소설을 태워버리고 사랑하는 마르가리따를 떠나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가둔다.
거장이 떠난 것을 알게 된 마르가리따는 사탄의 무리들과 타협하여 마녀가 되어 거장을 찾아 나선다. 연인을 찾는 대가는 볼랜드를 위해 사탄의 무도회의 여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미 인간의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채로 날아다니던 마르가리타는 이제 거대한 축제장에서 모든 죽은 자들의 영접을 받는 안주인이 된다. 연인을 구하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하는 마르가리따는 파우스트를 연상시키지만 그녀는 주체적이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비록 마녀가 되었으나, 작은 행동들에서 그녀는 스스로가 가진 가치들을 포기하지 않으며, 거장에 대해 헌신적이면서도 동시에 거장도 포기했던 작품에 대한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거장도 포기한 그 작품을 살려내겠다는 굳건하고 주체적인 의지를 보인다. 그녀가 사랑한 것이 거장 그 자체인지 아니면 거장의 작품인지 혼동될 정도다.
작품 속에는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스토리의 무게에 눌려 작품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상징성에는 주목하기 어려운데, 작품 해설에는 작품이 발표된 이래 작품이 지닌 다양한 층위의 의미가 끝내 소진되지 않고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고 설명된다. 그 이유로 서양문화의 주요 축이 되는 성경의 이야기와 인물들이 흥미롭게 재해석되어 있고, 그 안에 내포된 의미들이 다양한 시대, 다양한 공간의 독자들을 위해 활짝 열려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결론은 공산 치하의 어둠속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추구되어 온 자유와 진리가 비록 사후 26년만이지만, 살아남았고 이렇게 우리에게 남겨지게 되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