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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기아의 진실을 대면하고..

[도서]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저/유영미 역
갈라파고스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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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영화 헝거를 보았다. 아일랜드 단식투쟁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는 단식투쟁의 역사적 의의보다는 단식이 불러오는 죽음의 과정 그 자체에 집중했다. 굶어죽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평화롭지 않았다.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튀는 폭력적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기암 환자의 비참한 모습과 닮았다. 몸속의 세포들의 활동에 동력이 되는 모든 양분이 소진되면 이제 더이상 기력을 잃은 세포들로 구성된 몸의 기관들이 기능을 잃는다. 조금씩 기력을 잃은 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죽음과의 경계를 끔찍한 모습으로 보여준다. 소화기관은 천공으로 내출혈을 일으키고, 궤양으로 가득한 피부는 썩어들어 가고, 뼈와 근육은 몸을 움직일만한 구동을 잃어 움직이지 못하며, 망가진 피부들은 이불이 피부를 건드릴 수도 없는 상태가 되고, 면역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면 간, 신장, 허파, 심장, 뇌 등의 필수 기관됴 염증으로 차차 기능을 잃고 죽어간다. 그러한 고통은 신체에 남아 흐르는 당을 소비하는 최초의 72시간이 지난 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점점 심해져간다. 이것이 굶어죽는 것의 실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굶어 죽는 일은 단순히 그냥 배가 고픈 상태로 기운이 없는 상태로 고요히 죽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남아 돌아가는 먹거리가 없어서,  이렇게 끔찍한 상태로 내몰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일까? 현재 지구 인구의 6~7명당 1명 꼴인 10억명 이상이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영양실조와 그에 따른 불구 상태에 놓여져있다. 매일 지구상 3만 7천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죽어가고 있고, 3분에 1명 꼴로 비타민 A 부족으로 실명한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서 전체 인구의 36퍼센트가 기아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인류는 힘을 합쳐서 더 잘 사는 방향으로 나가려고 할까? 과거에 비해 기아는 조금씩 더 해결되어 가고 있는중일까? 천만의 말씀이시다. 기아로 인한 사망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인구증가율에 따른 비율은 감소). 사라하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1972년과 2010년 사이의 심각한 기아 상태의 숫자는 8천2백만명에서 2억 2백만명으로 급증했다. 전쟁 난민과 긴급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WFP(World Food Programme)의 1년 예산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평균 60억달러에서 36억 달러로 줄었다.  책이 처음 출간된 1999년 이후 오늘날까지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는 늘었다. 


왜, 무엇때문일까. 식량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엉터리 주장으로 밝혀진 멜서스의 이론이 옳았던 것일까. 실리콘밸리의 눈부신 과학 기술이 우리의 문화를 송두리채 흔들어 놓는 동안, 반대로 우리는 늘어나는 인구를 먹일 수 있을만큼의 식량증산에 실패한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73억명의 지구의 인구는 

정상적이라면 120억명을 먹여살릴 수 있을만큼의 농업생산량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主食) 가격은 최근 10년새 두 배 상승했다. 파키스탄에서 예방 캠페인을 통해 사라졌던 소아마비는 5년 만에 영양실조로 면역력 결핍 상태에 놓은 아이들을 강타해 수천명의 아이들을 불구로 만들었다. 만일 이렇게 지구상의 인구 1/7을 아사로 몰아가고 있는 기아가 식량 부족이 아닌 다른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대량 학살이다. 그 대량학살은 주식을 대상으로 한 투기, 남반구 농경지 약탈, 농업 연료, 농업 덤핑 등으로 나타나는 무지막지한 금융자본의 횡포로 모아진다. 


굶주림에 가장 처참하게 노출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빈국들 농민들이 3천년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던 농업에서 단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트랙터와 비료와 가축 종자 등의 도움 없이 오로지 인간의 노동력에만 의지한채 농사를 짓는 동안, 유럽연합과 OECD 국가들은 농민들에게 수출지원금을 지불하고 잉여농산물을 덤핑 가격으로 풀어놓음으로써, 그마저도 그렇게 어렵게 지은 농산물을 가져다가 팔 수 없게 만든다. 거대한 다국적 민간 기업 및 헤지펀드와 국가 펀드들은 앞다투어 이들 농민들의 경작지를 대대적으로 사들인다. 2010년 한 해동안만 4,100만 헥타르의 비옥한 농지가 이들 손에 넘어갔다. 이들 남아프리카 비옥한 토지에서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대량으로 매입된 토지에서 생산된 농작물들은 자국 시장에 독점 공급되거나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등의 농업연료를 생산한다.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만성적 실업, 질병, 아동 성매매, 절망만이 남아있는 참혹한 도시의 빈민가로 내몰린다.


친환경이라고 알고 있는 바이오에탄올의 실체 역시 기아를 부추기는 대량학살자다. 바이오에탄올로 굴러가는 자동차의 50리터 연료탱크를 채우려면 어린이 한 명을 1년동안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옥수수 358킬로그램을 태워야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은행과 헤지펀드 등의 대규모 투기세력은 농업 원자재거래소로 몰려들어, 선물거래 등의 '합법적 수단'을 통해 천문학적 이득을 얻으며, 그 이득은 주식 가격 상승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스위스의 앙드레 S.A,  미국의 컨티넨털 그레인, 미국의 카길 인터네셔널,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 등의 세계 거물급 곡물거래상들의 상업함대가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전세계 곡물의 매매가를 결정하는 화이트컬러 강도들이다.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1/4이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은 과잉 영양이 만연된 질병으로 퍼질만큼 고기를 먹어치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한 거대 시설에서 사육되는 소들이 먹는 옥수수의 양이 만성 기아로 허덕이는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많다.  이것들이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구상에서 기아라는 이름의 대량학살이 종식되기는 커녕 더욱 심화되고 있는 이유다. 내전과 자국의 이익에 따라 유엔이나 '경찰국가'조차 방관하는 군부의 약탈 등 군부와 독재와 같은 정치적으로 취약한 나라에서 특히 기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대략 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책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접하면서 약탈적 금융 자본의 세계화의 실체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거대 자본의 성격과 약탈적 구조에서 부당한 혜택을 얻고 있는 선진국의 사람들이 이 불행을 함께 나누어가져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잘사는 서구인들의 머리속을 물들인 생각,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기는 끔찍한 생각이 나선다. 지금 중년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이론중 가장 잘못된 것 중 하나가 멜서스의 인구론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멜서스는 그 엉터리 인구론에 따라 기아가 인류의 지속적 삶에 필수적 기능을 한다는 단순히 엉터리이기만 한 주장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발전이라는 시각으로 채색하는 위험한 이론을 퍼뜨린 인류사의 원흉이다.  기근으로 인구가 자연적으로 조절된다는 생각은 고매한 중산층들의 양심에서 가책을 제거하고 탐욕을 정당화한다. 기아를 자연적으로 지구의 과잉인구 조절의 수단으로 인식함으로써 이제 한쪽으로 치우친 자본의 부가 주는 아늑함을  그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가난과 기근을 부추기는 여러 요인들은 앞서 말한 탐욕적 거대 자본과 약탈적 세계화와 함께 각국의 개별적인 사회 구조적이고도 정치적인 원인들과 맞물려 있기에 기근이 심한 여러 지역들은 기근에 앞서 숱한 사연들을 품고 있다. 종교와 민족국제 정세를 뉴스로만 접해 간간히 전쟁과 학살, 자연재해 혹은 테러 등과 같이 단일 사건으로만 알고 있는 지역들이 가진 수십 수백년에 걸친 반목과 갈등의 역사적 이야기들은 세계와 기아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소말리아, 르완다, 시에라리온 등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에 얽혀있는 인종간의 갈등, 자원 전쟁, 국제적 금융그룹과 국제적 기업등의 외국세렵과의 결탁 등은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에 따른 실향민과 난민의 발생에 평화로운 선진국들이 책임이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의식주 중 인간에게 가장 필수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먹는 것이다. 너덜너덜한 거지꼴의 옷을 입더라도, 비가 새고 바람이 들어오는 허술한 집에서 여러 식구가 한방에 모여 자더라도, 먹을 것만 충분하다면 최소한 죽지는 않는다. 영양실조에 따른 장님이 되지도 않는다. 면역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배가 불룩해지고 걷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일은 모면할 수가 있다. 무슨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소한의 생명 연장과 건강 유지에 필요한 영양이 공급된다면 말이다. 그 공급이 폭력적이고 탐욕적인 자본의 속성에 따른 한 쪽의 혜택에서 분배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그 약탈적 자본의 재순환의 늪에 빠진 현대 사회에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는 힘없는 독자 입장에서는 힘들어보이므로, 단순 원조가 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기아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이를 통해 전세계 기아의 실상을 알리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작은 변화들을 이끌어 낼 화력을 제공하고, 또 그 작은 힘들이 모이고 또 모여 그 희망의 불씨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