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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그림자 제왕의 전설

[eBook]꿈꾸는 책들의 도시 (세계문학의 천재들 002)

발터 뫼르스 저/두행숙 역
들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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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스토리 소개는 힘들 것 같다. 읽은 지 오래되어서 지명과 인명도 다 잊어버리고 자세한 내용도 잊어버렸지만, 읽을 때의 인상은 아직 남아있다. 이 책을 산 건 이 책의 2탄에 해당되는 <꿈꾸는 책들의 미로>가 나오고 나서, 그 전에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쓴 반응들을 보고 나서였는데, 반응 자체라기 보다는 제목에 홀려서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는 판타지인데, 외계인이나 괴물들이 중심이 된 게 아니라, 책들이 주인공인 듯해 보인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실상 주인공은 공룡이다. 이 점이 멋진 파트이다. 책 읽는 공룡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견습 소설가인 주인공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직립보행을 하고 말을 하는 공룡 린트부름 족이며 린트부름 요새에서 살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생긴 것은 험악하게 생겼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부흐하임은 멀리서부터 오래된 책들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전설적인 책도시다. 이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나'라는 화자가 어떻게 해서 '피비린내나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으며 어떻게 '오름'을 경험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서술하며 시작하는 액자 구조로 되어 있는데, 특이한 건, 나는 이 주인공 공룡 미텐메츠가 쓴 책의 번역서이어서 중간 중간에 이 번역자의 주석이 달려있다. 따라서 이야기의 본체는 화자가 직접 미텐메츠의 시점으로 바뀌고,책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책 한권을 손에 넣게까지의 모험담이 쓰여져 있다. 


그가 사는 린트부름 요새는 대부분이 작가이며, 문학적 스승인 대부를 후견인으로 가지는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단첼로트 대부는 그의 스승이자 대부이다. 단첼로트 대부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기는데 그것은 자신을 찾아왔던 어느 문학 지망생이 가지고 온 원고에 대한 것이고, 그와 그의 원고를 구하기 위해 부흐하임으로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온갖 권모술수와 음모 계략이 넘치는 책책의 도시 부흐하임에 도착한 그는 생전에 볼 수도 없었던 수많은 각종 고서들이 쏟아져나오는 책방들을 들락 거리면서 조금씩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특히 어마어마한 양의 고서들과 희귀본들이 매장되어 있는 부흐하임의 지하도시의 전설에 대해 듣게 되고, 때로 그에게 몸을 사리는 자를 만나고 때로 친절을 위장해서 그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깊숙한 세계까지 탐험하게 되는 스토리이다. 


지하도시에서 펼쳐지는 온갖 모험이 무엇보다도 새롭고 재미있는 것은 모든 모험과 서사를 책과 관련있게 창조한 작가의 상상력이다.  책은 때로 독살의 무기가 되고, 책의 날카로운 종이장으로 만들어진 그림자 제왕이라는 괴물은 지하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고희귀본이 묻혀있는 책들을 사냥하기 위해 책 사냥꾼들이라는 존재들이 지하세계를 휩쓸고 충만한 영감으로 글쓰기의 경지에 오르는 상태인 '오름'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때로 섬뜩하고 때로 무시무시하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함을 주는 유모 감각과, 상상도 하지 못하는 세계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면서 하나씩 복선들이 풀려가는 과정 정말 흥미로왔다. 이북으로 읽었는데, 읽었다기 보다는 듣기 기능으로 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 거대한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 처음 한참동안 전개가 이어지는데, 판타지에 익숙하지 않은 나같은 독자에게는 넘기 어려운 산이지만, 생각없이 차에서 틀어놓고 듣는둥 마는둥 하다보니 어느 시점엔가 완전 재미있어져서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꿈꾸는 책들의 미로>가 출간되었을 때 전편인 이 책을 샀는데, 다 읽고 나니 다음 편을 꼭 읽어야겠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