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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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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1Q84 3 - 기어이 사랑이라 불러 닿지 않을 김훈은 바다의 기별 첫 챕터 맨 앞장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이 이야기한 그 멀고 먼, 닿을 수 없는 관점에서 본 사랑을 하루키는 2300페이지 짜리의 거대한 판타지 소설로 단단하게 빌드하고, 개연성을 부여하고, 기어이 닿지 않는 것들을 닿게 하였다. 둘 다 천재다. 1편과 2편이 미스터리 추리물에 가깝다면 3편은 사건이 해결되면서 동시에 너무 멀고 아득해서 도저히 닿을 것 같은, 품을 수도, 만져질 수도, 건널 수도, 다가오지도 않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
[무라카미 하루키] 1Q84 2 - 스토리 요약 2편은 1편에 비해 스토리의 진전이 큰 폭으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알쏭달쏭했던 장르적 모호함도 개어졌고,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이 더 명확해지고 애틋해지면서 동시에 어린 소녀와의 섹스라는 충격적 장면을 거부감없이 판타지적으로 잘 배치하였다. 의문의 사건은 조금씩 개연성을 갖게 되고 산만했던 여러 줄기들이 조금씩 교차점을 갖는다. 공기 번데기와 리틀 피플에 대한 은유도 마음속의 그림자가 도터와 마더라는 상징성을 통해 판타지화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덴고와 아오마메의 아주 먼 기억 어릴 적에 가졌던 따스한 느낌에서 구체화되는 사랑에 대한 묘사가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낸다. 계속되는 반전의 묘미, 스릴러적인 감각, 사랑, 섹스, 판타지 정말 많은 걸 다루고 있다. 이번에 노부인의 지시에 따라..
[무라카미 하루키] 1Q84 - 두개의 달이 있는 이상한 세계 책 속의 주인공 사유에 빠지다 보면 줄거리를 잊어버린다. 비소설류를 빠르게 읽는 편인데 비해 소설류는 문장을 음미하는 편이라 3편까지 다 읽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테고 일단 줄거리를 정리해보자. 아오마메는 전문 킬러이다. '노부인'에게 지령을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자연사처럼 처리한다. 그녀가 죽이는 사람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아내를 괴롭혀온 죽어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어느날 그녀의 세계가 무언가 아구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가 알고 있는 시간 1984년의 어딘가가 묘하게 꼬여 그가 알지 못한 세계와 섞인 두개의 달을 가진 세계. 그녀는 그것을 1q84라고 명명했다. 스포츠 클럽에서 일하는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남편의 폭력으로 자살한 뒤 그를 죽인 경험과 한 돈많은 노인과의 인연..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그림책이다.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 달라는 소망이 담긴 아이들의 그림도 함께 실려있다. 이 아이들 만큼도 진화되지 않은 어른들, 돌고래의 불법 포획과 감금과 폭력에 동참했던 모든 어른이 이제 동화책에 감명받고 눈물 흘릴 줄 아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책을 읽고 반성할 때다. 동화책에 담긴 제돌이의 목소리에 공감과 희망을 담을 차례다. 그래야 이 책을 읽고 눈물 흘릴 줄 아는 가슴을 가진 어린 세대가 자라서 그 다음 세대에 또 다음 세대에, 조금이라도, 파괴 속에 남은 자연과의 공존을 유산으로 남기고 건네줄 수 있다. 무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만함의 틀 속에 박힌 인식의 발전없는 정체가 과거에도 지금도 그대로 자연과의 화해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노에제도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서양인들의 눈은..
[이승우] 종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지상의 노래 후. p40 박중위가 주는 라면을 받아먹지 않았다면.. 연희 누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태풍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문제 될 것이 없는 사소한 현상들이 태풍이 일어났기 때문에 태풍을 유발한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과가 무작위로 원인들을 소환하는 이 시스템은 심리학적 요인에 의해 지원받고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인간 심리의 무규칙성과 돌발성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과 인과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낸다. p115 헤브론 성이 그에게 도피성인 것은, 그가 세상에서 범한 과거의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앞으로 범할 죄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더 그랬다. p313 ..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리즈 시절에 쓴 책은 리즈 시절에 읽어야 김영하의 비교적 최근작이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너의 목소리가 들려 를 읽으려 했더니,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이 예판 중이고, 둘 다 읽기에 뭔가 내 쪽에서 아쉽다. 이 작가의 책을 하나도 안읽은거다. 이 작가가 데뷔를 거쳐 현재까지 쓴 소설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그동안 작가가 변천해 온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불쑥 책을 집어 들었다가는 뭔가 놓치는 행간이 많을 듯하다. 작가적 색채가 뚜렸한 분으로 알려져 있고, 작가에 대한 기초가 없이 작품 이해가 부족할 듯하여 초기장, 중기작 하나씩을 읽고 나서 읽기로 하고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을 골랐다. 소설은 1793에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에 대한 관조적 해석으로 시작한다. 마라가 끝까지 움켜쥔 펜이 차분하고 고요한 이 그림에 긴장..
[박범신] 소금 - 땡볕의 소금 밭에서 스러져간 아버지 세 명의 다른 아버지가 있다. 가족들이 행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완전 존재감 없던 실종된 아버지이자, 가족을 버리고 전혀 다른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아버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고집스레 염전을 일구다가 땡볕에 스러져버린 그 아버지의 아버지, 작은 땅콩밭을 일구며 욕심 없이 살아가는 것 마저 너무나 사치여서 결국은 몰락해 가는 항구 도시로 내몰려 나약한 몸으로 온갖 수모를 참으며 부두 하역 작업 일을 하다 끝내 비명횡사한 화자 [나]의 아버지. 마지막 두 아버지들은 척박한 시대에 태어나 온 몸 마지막 뼛속 뼈 마디마디가 모두 고갈될 때까지 후대의 광명을 자식에게 걸고 소처럼 일하다 스러져갔다.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의 희생은 노동이고 아버지의 희생은 소외이다.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