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자밖 여운

(445)
[줄리안 반스] 시대의 소음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사람이 ,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스스로 죽거나 타협하거나다. 차선으로 망명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 아마도 그건 배반이고, 체제에 순응하는 것 이상으로 역겹긴 마찬가지일 터였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된 세계에서 어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선택한 서방 체제에 충성한다는 전제가 필요할 터이니 말이다. 만일 그랬다면 그 작곡가는 자본가들이 열광하고, 서방 체제가 선호하는 곡을 써야 했을 지 모른다. 얼마 전 읽은 러시아 문학 강의에서도 망명을 택할 것인지, 작품 활동을 금지당한 채로 전제 정권이 망할 때까지, 혹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살아 남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던 스탈린 시대의 수많은..
[권용철] 우리 몸은 아직 원시 시대 텔로머라이제 염색체 끝에 붙어 있는 긴 텔로미어는 생명의 열쇠를 쥐고 있다. 체세포 분열시마다 텔로미어가 짧아져서 한계에 이르면 분열을 멈춘다. 텔로미어를 짧아지게 하는 것은 효소 텔로머라이제의 분비가 줄어들어서이다. 텔로머라이제의 분비가 왕성하면 텔로미어가 긴 상태로 유지되지만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노화가 일어나고 사망에 이른다. 그렇다면 텔로머라이제를 투입하면 영원한 삶을 보장받지 않을까. 하지만 텔로머라이제가 나이가 들으면 활동을 줄이는 것은 암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다. 암세포는 스스로 텔로머라이제를 분비하여 세포가 죽지 않고 점점 커져간다. 텔로머라이제 생산 유전자 스위치를 켜면 텔로미어가 길게 유지되어 젊음을 유지하는 대신 암의 위험이 있고 끄면 노화가 진행된다. 시트루인 유전자는 독성물질과 세포 ..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지적질 잘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일까 나쁜 친구일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의 결점들이나 실수들을 지적해 줌으로써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더 나은 인간이 된다면 사실상 지적질 잘 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라 해야 할 텐데 실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가 어느날 어떤 친구는 만나고 돌아서면 집에오는 길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고 생가했는데 다른 친구가 자신에게 이럴 땐 충고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면 안돼? 라고 짜증내는 모습을 보고 그 불편함의 실체를 깨닫고 자신 역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비쳤음을 깨닫는 부분이 나온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그런걸 깨달은 때문인지 요즘은 친구들 만나면 서로 칭찬 일색이다. 다 늙어 쭈글쭈글한 피부를 한 할머니들이 계모임같은 데서 어머 너는 어쩜 ..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김영사종교란 신념이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중심의 가치가 있어 추호의 의심도 없이 흔들리지 않게 그것이 옳음을 믿고 숭배하는 어떤 것이다. 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인지혁명, 농업혁명, 그리고 최근의 과학혁명으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가면서 숭배해온 종교적 가치들을 탐구하면서, 국가와 민족과 자본주의와, 회사 등 인류가 만들고 적응해 온 사회적 시스템들을 ‘상상의 질서‘라고 불렀다. 새 책 에서는 이러한 상상의 질서가 숭배하는 가치들을 더욱 심화시켜,종교에 비유하였다. 전작 사피엔스를 다 읽고 덮으면서도, 한 숨이 나오도록 글 정말 잘쓴다고 느꼈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호모데우스에서도 인류라는..
[반디]고발 고발 (더블커버 특별판) - 반디 지음/다산책방다같이 행복한 사회는 불가능한가. 낙원을 건설하려고 뿌린 피는 더이상 동작하지 않는, 아니 처음부터 동작 가능하지도 않았던 공허한 미몽의 실현 과정에서 생겨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찌꺼기로 체제를 유지한다. 전세계 인류 역사를 통해 이런 게 가능했던 사회가 있었을까. 한 때 막스의 ‘공산주의 유령’이 뜨거운 피를 수혈받아 동구와 구소련을 지배하던 당시에도 북한처럼 폐쇄되고 억압된 사회였을까. 동작 불능의 체계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대신, 그 오작동 사회를 설계한 설계자를 신격화하고, 애초 피뿌리며 꿈꿨던 세상, 그곳이 바로 지금 여기라고 바로 눈 앞에 있다고 속고, 속이고, 속는 척해야 그 궁핍 속에서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형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무엇이 미스터리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먼저 무엇이 미스터리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지식은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면 고인 물처럼 썩는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것을 수십년간 써먹는 건 썩어가는 더러운 물을 마시고 사는 것과 같다. 어떤 지식이 낡은 것이 되는 과정은 과학의 패러다임의 변화다. 우리의 앎은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던 것과, 배우지 않았는데 살면서 알게 되는 것들과, 책이나 TV를 통해 새로운 이론이나 과학으로 완전히 자리잡아 지식이 된 것들이 마구 섞인 채로 저장되어 있다. 읽으면서 저자의 주장과 문장에 여러가지 의혹이 들었는데, 결국 이런 책을 쓰는 이유가 뭘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욕심없이, 그저 낡은 지식을 업데이트해서, 썩은 물 대신, 최소한 정수라도 한 물을 마시고자 책을 읽는..
[일자 샌드] 센서티브 민감하다는 말이 때로 부정적인 의미로 들릴 때가 많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스스로 민감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민감한) 권리를 행사하려 하는 경우 민감성을 존중받기 보다는 이기적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 서울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외래 환자와 입원 환자들을 위해 가벼운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카페 정도만한 크기에 천장까지 책이 꽂혀 있고, 신간을 비롯해 읽을만한 책이 꽤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편이다.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오거나 전화통화는 금지되어 있지만, 카페 분위기처럼 되어 있으므로 소곤소곤 떠드는 것은 허용되는 편이다. 또한 개방되어 있는 도서관 구조상, 바깥의 일반인의 소음이 들어오고, 바로 옆에서 공사중이어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
[하타케야마소] 대논쟁 철학 배틀 철학책을 읽으면 가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결론도 없고 답도 없고 쓸모도 별로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이 만든 여러가지 개념들은 그 철학자의 생각을 그 철학자가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하여 깊이 있게 파고 들어야 대체로 가능하다. 고등학교 때도 윤리 시간에 철학을 조금 배웠고 대학때도 교양 시간에 배운 것 같긴 한데, 그 때 배운 건 개념의 나열에 불과했을 뿐, 그 개념의 진정한 의미와, 그것이 실생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수학이나 뭐 과학 심지어는 역사 같은 것 조차 학교 때 배워서 아는 거랑 성인이 되어 특정 주제의 책을 통해 아는 것은 천차만별인데, 유독 철학에 있어서 만큼은 책을 읽어도 학교 때 배운 것에서 별로 나아가는 게 없다. 그러니까 어쩌다 얻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