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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미는 곳에서, 떠나는 사람들 가끔 꿈을 꾸듯 떠남을 동경한다. 현실이 비루할 때, 발붙인 땅에서 풀 한 포기조차 자랄 수 없이 황폐하다고 느낄 때, 쳇바퀴처럼 늘 제자리인 이곳이 감옥처럼 답답할 때, 바다 건너 멀고 먼 반대쪽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위안이 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두려움과 불안을 이길 때, 이 정든 세계를 정녕 떨치고 떠나야할 만큼 현재와 미래가 절망적일 때, 가슴 터지도록 두려움과 설레임을 가득 안고 떠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떠난다. 열정을 걸고 청춘을 바쳐 이룩한 모든 것을 버리고 존재가 속한 세상 밖으로 사라져야만 한 줌 남은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땅을 치고 통곡해도 변하지 않는 운명이 밖으로 떠밀어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우리는 떠난다. 내가 읽은 ..
[2015 결산] 나르시스트적 성격파탄자들을 대하는 소심인들의 자세 [도서]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김세나 역 와이즈베리 | 2015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예전에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간들의 특성을 주로 다룬 심리학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린 기억이 있어서 무엇이었나 곰곰히 기억 속을 뒤져봐도 생각이 안나는데, 한마디로 그들은 성격파탄자들이다. 나르시스적 인물이 병리학적으로 분류된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나르시스적인 인물에 속하는 일반적인 유형도 있다. 즉, 인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같은 걸로 나르시스적인 성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나르시스란 무엇이며, 그 원인과 나르시스즘을 이해하는 주요한 성격 유형들을 소개한다. 2부는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유독 ..
[2015 결산] 동시대 소설가들과의 조우 [도서]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 존 프리먼 저/최민우,김사과 공역 자음과모음 | 2015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작가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집이다. 를 1편까지 읽고 2편을 샀는데, 아직 못읽고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작가란 무엇인가 와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정리해보면, 1. 존 프리먼이라는 한 명의 작가가 직접 인터뷰한 내용들이라는 점, 2.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인터뷰 형식으로 실은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고 돌아와서 에세이 형태로 그 소설가에 대해 작가의 언어의 산문으로 새로 쓴 글이라는 점, 3. 한 작가에 대한 내용이 서너 페이지 선으로 짧다는 점 4. 작가의 모든 소설에 대해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표 소설 혹은 최근 집필한 소설 한 권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는 점. 5. 존 프리먼이..
[2015 결산] 돌아서면 잊혀질 허무한 관계들 속을 헤엄치는 고독한 영혼 [도서]올 댓 이즈 제임스 설터 저/김영준 역 마음산책 | 2015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필립 보먼은 해군으로 참전했다가 돌아온 후 하버드로 편입해 졸업 후 기자를 꿈꾸지만 이루지 못하고 작은 출판사에 들어가서 판촉을 하다가 편집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과 사적으로 만나고 헤어진다. 뉴욕에 놀러온 남부 출신의 비비안과 결혼하지만 짧게 끝난다. 이후, 약간의 연애를 하지만,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애매한 불륜놀이를 하다가 그도저도 배신과 복수로 끝나고 더는 가정을 꿈꾸지 않을 중년이 된 채로 다시 간간히 연애를 하는 인생을 큰 사건 없이 천천히 나른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소설 속에 붙박이 처럼 어떤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고 등장해서 주인공이 되었다가 가지치듯 사라진다. 어떤 관계 때문에 인..
[2015 결산] 당신이 읽는 것이 곧 당신이다. [도서]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이석연 편저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한 마디의 말이 강한 메시지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적거나 줄을 긋는다. 깨달음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글자로, 밑줄로, 기억으로 남긴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될 것인가. 혹 습관처럼 매일 하는 행동이 혹시 잘못된 건 아닌가 의심과 선택의 기준은 어디에서 나올까. 삶의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시기에 그 기준은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같은 어른들에게서 받은 세계관이 될 때도 있지만, 책은 가장 가까이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먼 옛날부터 2천년을 넘게 오래도록 살아 남은 선조들의 가치 철학들에서 옮겨 적은 삶의 기준은 결단..
[2015 결산] 외계인의 언어, 얼만큼 이해했나 [도서]바이오코드 던 필드,닐 데이비스 공저/김지원 역 반니 | 2015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지난 번 유전자 관련 책을 읽었을 때 리뷰 중 유전체는 우리가 아주 일부만 이해할 수 있는 외계인의 언어로 된 책이 아닐까 하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이제 그 책이 외계인의 책이라면 우리는 외계의 언어를 꽤 많이 해독했으므로 그 해독된 부분을 단서로 해서 더욱 더 빠르게 책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 인간 유전체의 염기 서열을 밝혀냈을 때, 그 알쏭달쏭한 나선형 구조 속의 A,C,G,T의 순서가 인간 개체의 무엇과 어떻게 연결시킬지 막막했으나, 먼 우주 속을 광속의 속도러 여행하다 몇 년에 한 번씩 지나가는 별처럼 성긴 지식의 발견은 빠른 속도로 자라나 틀을 만들었고, 이제 지..
[2015 결산] 책과 씨름하던 정겨운 풍경을 책 속에서 [도서]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저 문학동네 | 2015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생각은 빠르게 지나간다. 책 속의 글씨들은 내 생각의 물꼬를 터 주며 보이지 않는 저자의 영혼과 소통하고 교류하고 때로 대치하기도 타협하게도 만든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들은 참으로 찰라적인 순간에 이루어지고 흔적없이 사라진다 휘발되면 없어질 생각들. 산적한 일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호시탐탐 책읽을 기회만 엿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은 나의 생각이 오래 전에 읽은 다른 책들과 또 오래전에 보았던 풍경들, 사람들과 만나서 나누던 이야기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보고 들은 것과 경험한 것들로 이루어진 기억의 신경망이 책 속의 글씨들과 새롭게 조우하면서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는 그 연결과 만남의 순간이다. 아쉬운..